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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안의 외국인 '독립투사' 베델, 그를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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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박상규 기자]
"하늘은 무심하게도 왜 그를 이다지도 급히 데려갔단 말인가!"

37세 젊은 외국인의 죽음을 안타까워한 조선의 마지막 황제 고종의 조문(弔文)이다. 황제로부터 깊은 탄식을 자아내게 했던 인물은 바로 영국인 어니스트 베델(1872∼1909·한국명 裵說). 그는 "내가 한국을 위해 싸우는 것은 하나님의 소명"이라며 지금으로 부터 100년전인 1904년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인물이다.

베델은 한국인이 아니면서도 1988년 잡지 <뿌리깊은 나무>이 선정한 한국의 근대인물 88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 책은 베델에 대해서 "대한제국 말기에 어떤 한국사람 못지 않게 대한의 독립을 위해 일제와 싸우다가 마침내 이 땅에서 돌아가신 언론인"이라 설명했다.

베델이 <런던 데일리뉴스>의 특파원으로 러일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서울땅을 처음 밟은 건 1904년. 그러나 그는 러일전쟁보다 일제의 한국침략행위를 해외에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양기탁, 박은식, 신채호 등 민족진영의 지지를 받으며 <대한매일신보>와 영문판 <코리아 데일리 뉴스>를 창간하여 항일언론투쟁으로 한국의 국권회복 운동에 헌신했다.

외국인 독립투사, 베델

베델은 누구인가 ▲ 베델은 1872년 영국 브리스톨(Bristol)시에서 태어난 영국 언론인으로, 한국명은 배설(裵說). 1904년 <런던 데일리 뉴스>지 특파원으로 러일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한국에 왔으며, 같은해 7월 양기탁(梁起鐸) 등과 함께 서울에서 <대한매일신보>와 영문판 <코리아 데일리뉴스>를 창간하였다.

이 신문에서 베델은 일본의 침략정책을 과감히 비판하여 국민의 의분을 북돋워 배일사상을 고취시켰으며 일본의 침략행위를 지상(紙上)에 폭로했다. 일본은 영국인으로서의 치외법을 이용하여 배일론(排日論)을 펴는데 앞장선 그를 영국 정부와 협력해 추방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베델은 1907년 10월과 1908년 6월에 서울 주재 영국 총영사의 재판에 회부되어, 상하이[上海]에서 3주간 금고형을 받았다. 이후 일제의 고문 후유증으로 1909년 5월 1일 서울에서 37세의 젊은 나이로 순국했다. / 박상규 기자 국사 교과서에나 볼 수 있었던 '외국인 독립투사' 베델(1872~1909) 선생의 95주기 추모제가 24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 외국인묘지에서 열렸다.

베델선생기념사업회(회장 진채호, 이하 기념사업회) 주최로 다섯 번째를 맞이한 이날 추모제에는 크리스토퍼 로빈스 주한 영국대리대사, 이문원 독립기념관 관장, 채수삼 서울신문사 사장 등을 비롯한 200여명의 인사들이 참석해 고인의 뜻을 기렸다.

크리스토퍼 로빈스 주한 영국대리대사는 기념사에서 "행사를 준비하고 참석해 준 한국인에게 감사하다"며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자유를 소중히 여긴 베델 선생의 정신은 영국과 한국인에게 많은 귀감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크리스토퍼 대사는 이어 "언론이 자유를 수호하는 일 뿐만 아니라 권력이 정보를 독점하지 못하도록 감시해야 한다"며 한국 언론인들이 좀더 분발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문원 독립기념관장은 추모사에서 "외국인으로 한국의 독립을 위해 일제의 탄압에 항거한 선생을 숙연한 마음으로 추모한다"며 "오늘 이 자리가 선생의 유지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김우전 광복회장은 "오늘날 일본은 다시 군사 대국화를 시도하고 있다"며 "일본의 군사야욕을 저지하고 아시아 평화 정착을 위해 노력하는 길이 베델 선생의 뜻을 이어받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채수삼 서울신문 사장은 "베델 선생이 37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지지 않았으면 대한매일신보가 조선총독부의 기관지로 전락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서울신문의 뿌리인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베델 선생의 뜻을 이어 겨레와 공익을 생각하는 정론지가 되겠다"고 다짐을 밝히기도 했다.

진채호 베델기념사업회회장은 "베델 선생이 한국에서 보낸 5년의 세월은 일반 사람들 100년의 삶과 맞먹는다"며 "선생이 설립한 대한매일신보가 오늘날까지 이어지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며 서울신문으로의 개명을 아쉬워했다.

또한 진 회장은 "베델 선생과 같이 자유와 진실을 소중히 여기는 언론인이 없는 것 같아 아쉽다"며 "앞으로 '베델 언론인상'을 만들어 참언론인을 키우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나 진 회장은 “예년에 비해 행사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많이 늘었지만 언론사들의 관심은 여전히 부족하다”며 아쉬움을 표시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서는 수 백 억원의 교비를 유용해 구설수에 오른 장충식 단국대 이사장이 베델선생기념사업회 명예회장으로 위촉돼 빈축을 사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참석자는 "비리에 연루된 인물이 기념사업회의 명예회장이 된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베델 선생의 업적에 누가 될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베델언론인상 만들어 참언론인 키울 것" [미니인터뷰] 진채호 베델선생기념사업회장 ▲베델선생기념사업회 회장 진채호씨 이 나라의 국운이 풍전등화일 때 외국인으로 외세와 맞서 구국언론을 창간한 베델 선생. 그의 사후 90년이 넘도록 정부는 물론 개인도 그의 추도식 행사 하나를 제대로 챙기는 사람이 없었다.

5년전부터 베델선생 기념사업회장을 맞아 선생의 묘소를 돌보고 또 추도식을 주고나해오고 있는 진 회장은 "베델 선생은 우리 민족의 은인이나 선생의 묘소를 돌보는 이가 없어 늘 부끄럽게 생각해 왔다"고 말했다.

평소 선생의 묘소가 평분(平墳)이어서 참배객들이 묘소를 밟고 서있는 모습을 늘 안타깝게 생각해온 진 회장은 지난 2000년 한식날을 잡아 선생 묘소의 봉분을 만들고는 그 해부터 추도식을 개최해 왔다. 추모식장에서 진 회장을 만나 몇 마디 나누었다.

- 베델 추모식을 주최 하게 된 배경은.
"2000년 베델 선생의 묘소를 단장하면서 추모회를 개최했다. 선생은 외국인으로써 한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다. 또한 한국의 1세대 언론인으로써 참 언론인의 모범을 보여줬다. 그러나 선생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아 안타깝다. 선생의 삶을 추모하고 알리기 위해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 앞으로의 계획은.
"많은 행사를 생각하고 있지만 현재 '베델언론인상' 제정을 첫째로 고려하고 있다. 언론은 많지만 참언론인이 부족한 현실이다. 좋은 언론인을 키우는데 힘을 보태고 싶다."

- 구설수가 끊이지 않고 있는 장충식 이사장을 명예회장으로 위촉한 이유는 무엇인가.
"비판이 많이 있는 것 알고 있다. 그러나 장 이사장은 백범김구선생 기념사업회 회장을 하면서 많은 도움을 줬다. 우리 추모회 명예회장으로 큰 문제가 없다고 본다" / 박상규 기자 /박상규 기자 (comune414@hotmail.com)- ⓒ 2004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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