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초등교과서, 고려때 ‘23만 귀화’ 언급도 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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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기사
4학년 2학기 도덕교과서 66~67쪽엔 기자와 외국인이 김칫맛을 두고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김칫맛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외국인은 “네 즐겨 먹습니다. 한국김치는 너무 맛있어요. 일본 기무치와는 비교도 안되지요”라고 서술돼 있다. 한국 대표음식인 김치의 우수성을 소개하는 것은 좋지만 기무치를 폄훼하는 것은 타문화에 대한 무시이자 타문화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기 쉽다.

초등학교 사회와 도덕 교과서에는 이같은 단일민족주의와 자민족 중심주의적 서 술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6학년 1학기 사회교과서 ‘하나로 뭉친 겨레’ 부분은 “우리 겨레는 최초의 나라 고조선을 세우고, 고구려, 백제, 신라에 이어 통일신라를 거치면서 발전해 왔다”고 시작한다. 이는 당연한 내용 같지만 단일민족주의의 이념이 담겨 있다.

우리 겨레가 최초의 나라 고조선을 세웠다는 말은 고조선 성립 이전에 이미 같은 핏줄을 이어받은 우리 민족이 존재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박철희 경인교대 교수는 “교과서에서는 ‘고조선이 세워지기 전에 우리 조상의 생활 모습이 어떠하였는지 조사해 보자’라고 하면서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시대를 설명하기 있기 때문에 마치 구석기 시대부터 고조선에 이르기까지 같은 핏줄의 민족이 이 지역에 살아온 것처럼 서술돼 있다”고 지적했다.

박교수는 올봄 학술지 “교육사회학 연구”에 발표한 ‘다문화 교육의 관점에 기초한 초등사회· 도덕 교과서 내용에 대한 비판적 고찰’이라는 논문에서 이같은 사례를 소개했다.

발해는 고구려유민과 말갈족이 함께 세운 국가라는 게 역사상식이다. 그러나 국사를 다루는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는 말갈족에 대한 내용은 전혀 없다. 발해는 고구려와의 연속선상에서만 다루어지고 있다.

고려도 마찬가지다. 고려시대 전 시기에 걸쳐 이민족이 귀화한 숫자는 23만8000여명에 이른다. 이중 한족은 국제정세에 밝고, 문예에 능해 관료로 많이 진출했고, 귀화한 발해인들은 거란과의 전쟁에 참여해 큰 공을 세웠다. 최무선에게 화약제조 기술을 전해준 인물인 이원도 중국 강남지방 출신 귀화인이다. 그러나 이들의 존재와 문화적 영향에 대하여 교과서는 침묵하고 있다.

여진족에 대한 교과서의 서술도 편향적이다.

“고려와 송나라가 평화로운 교류를 하고 있을때 여진족이 또 다시 고려를 괴롭했다...(중략) 고려는 윤관장군으로 하여금 별무반이라는 특수부대를 편성하여 여진족을 물리치게 했다.”(6학년 1학기 사회교과서 30쪽)

“새 왕조는 영토확장과 국방강화에 힘썼다...(중략) 특히 세종때는 두만강과 압록강 유역에 들어와 살고 있던 여진족을 몰아내고, 이 지역에 4군과 6진을 설치하여 영토를 넓혔다.”(6학년 1학기 사회교과서 39쪽)

교과서는 여진족을 우리 민족을 괴롭히는 응징의 대상으로만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절반의 사실만 담고 있다.

고려시대 귀화한 여진족은 북방정세를 제보하거나 성을 쌓기도 하고, 고열과 같이 군공(軍功)을 세워 고위관직에 오른 이도 있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동북면 출신으로 이 지역 여진족을 자신의 지지기반으로 삼았다. 개국공신이던 이지란은 이 지역 출신 여진족 지도자로서 동북방면의 여진족과 조선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조선왕조때 동북방면의 영역으로 영토확장이 가능했던 것은 여진족 포용정책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이런 여진족과의 우호적인 내용은 교과서에서 찾아볼 수 없다.

민족의 우수성을 강조하기 위해 타민족을 끌어오는 사례도 있다.

“한민족은 강인한 데가 있습니다. 중국 역대왕조, 일본 등 주변 국가들이 끈질기게 침략을 시도했으나 결국은 모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중략) 예를 들면 한반도에 한민족이 아닌 일본 또는 다른 민족이 있었다면 벌써 망했을 겁니다.”(4학년 2학기 도덕교과서 89쪽)

이는 한민족을 우월하게 묘사하기 위해 타민족을 비하한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박교수는 “문화에 대한 태도가 유아기에 형성되는만큼 어린 시기에 문화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다원화, 세계화의 추세에 비추어 볼 때 단일민족주의와 자민족중심주의에 기초한 교과서 서술방식은 재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병한기자 silverm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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